
포스코에스피(POSCO SP)가 8월 13일 포스코 직속 스테인리스(STS) 전문 자회사로 공식 출범했다. 2017년 이후 약 9년 만에 STS 정밀재와 판재가공 사업이 다시 포스코 직속 계열사 체제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됐다.
이번 출범은 단순한 법인 신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포스코에스피가 지난 8월 5일 공시한 ‘특수관계인으로부터 영업양수’에 따르면 회사는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의 STS 정밀재·판재·포항정정 사업을 관련 토지 및 건물과 함께 지난 7월 31일 양수했다
공시에서 밝힌 양수 목적은 ‘그룹 철강관련 사업 영역 재조정 및 구조 개편’이다. 영업양수에 따른 영향으로는 ‘STS철강 전문기업으로 재도약, 시장 경쟁력 확보로 지속 성장’을 제시했다.
기존 STS사업을 단순히 별도 법인으로 떼어낸 것이 아니라 관련 사업과 자산을 포스코에스피로 이전하고, 이를 포스코 철강사업 체계 안에 다시 배치한 것이다.
포스코에스피가 향할 사업 방향도 한층 선명해지고 있다. 회사는 정밀재 제조와 판재 가공센터 기능을 동시에 갖춘 사업구조를 기반으로, 범용재 유통 물량 확대보다는 실수요 가공·공급과 고부가 정밀재 시장 확대에 무게를 둘 계획이다.
특히 포스코의 소재와 연구개발 역량을 포스코에스피가 보유한 정밀압연·가공 기술 및 고객 기반과 연결해 수소와 배터리 등 미래 수요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향후 성장의 핵심동력이 될 전망이다.
대한ST에서 포스코에스피까지…9년 만의 귀환
포스코에스피의 뿌리는 2007년 대한전선이 스테인리스 사업을 분리해 설립한 대한ST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스코는 2009년 대한ST를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했으며, 이후 부산지역 STS 가공 코일센터였던 포스코NST를 합병해 포스코AST로 통합 운영했다.
포스코AST는 스테인리스 압연과 가공·판매를 아우르며 포스코그룹 내 STS 하공정 사업의 한 축을 담당했다. 포스코가 생산한 소재를 고객 요구에 맞게 가공해 공급하는 한편 정밀재 생산과 판재 가공센터 사업을 함께 운영했다.
이후 그룹 차원의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소속과 법인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2016년 포스코P&S가 포스코AST를 흡수합병했고, 2017년 포스코P&S 철강사업부문이 포스코대우에 합병되면서 포스코 직속 계열 구조에서 벗어났다.
2020년에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철강 가공사업 부문 물적분할을 통해 포스코SPS가 출범했으며, 2021년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으로 사명을 변경한 이후 최근까지 STS사업실 형태로 사업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STS 사업은 압연 임가공 축소와 일부 설비 정리, 유통사업 축소 등 상당한 사업구조 재편도 거쳤다. 과거와 비교해 외형은 줄었지만 정밀재 제조기술과 판재 가공 역량, 실수요 고객 기반은 유지해 왔다.
포스코에스피 출범으로 이 사업은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게 됐다.
현재 사업은 크게 정밀재 생산·판매, 판재 가공·판매, 포항 임가공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향후 성장 방향을 가늠할 두 축은 정밀재 경쟁력 강화와 판재 실수요 확대다.

판재 가공센터, 유통보다 실수요 확대에 방점
포스코에스피 출범을 앞두고 국내 STS업계가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판재 가공센터의 향후 역할이다. 포스코 직속 자회사로 돌아오는 만큼 그동안 축소됐던 유통 물량이 다시 크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포스코에스피가 그리고 있는 방향은 범용재 유통 확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판재 가공센터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범용 규격 제품을 대량으로 비축해 시장에 판매하기보다는 실제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사들의 주문에 맞춰 소재를 확보하고 가공·공급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결국 포스코에스피가 지향하는 가공센터의 역할은 ‘얼마나 많은 코일을 시장에 판매하느냐’보다 어떤 실수요 고객을 확보하고 해당 고객이 요구하는 제품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가공·공급하느냐에 보다 가까워 보인다.
자동차와 가전 등을 비롯한 기존 고객 기반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산업과 고객사를 찾아 판재 실수요를 확대하는 것이 향후 가공센터 사업의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연산 2만톤 정밀재…생산량보다 ‘품질·시장 확대’
포스코에스피가 미래 성장축으로 보다 강하게 육성하려는 분야는 정밀재다.
현재 안산의 정밀재 생산능력은 연간 약 2만 톤 규모다. 과거 사업 효율화 과정에서 일부 설비들을 정리했으며 현재는 광폭 정밀압연을 중심으로 생산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정밀재는 단순히 두께가 얇은 스테인리스 제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객이 요구하는 경도를 정확하게 구현하고 재질과 두께 공차, 표면 등 다양한 품질조건을 일정하게 맞춰야 하는 제품까지 폭넓게 정밀재 영역에 포함된다.
회사 관계자들도 정밀재의 핵심을 단순한 박물 두께가 아닌 경도와 재질, 두께 편차, 표면 품질 등을 고객 요구 수준에 맞춰 정밀하게 관리하는 능력으로 설명했다. 같은 두께의 제품이라도 용도에 따라 요구되는 경도와 물성, 표면 특성이 달라지는 만큼 범용 냉연제품보다 생산 노하우와 품질 관리능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포스코에스피는 오랜 기간 정밀압연 사업을 영위하면서 축적한 기술력과 광폭 경질재 생산역량을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
국내 정밀재 시장은 공급능력이 실제 수요를 웃돌고 있는 만큼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것만으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다. 이에 포스코에스피는 대규모 생산능력 확대보다는 기존 설비의 경쟁력과 품질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제품과 수요시장을 확보하는 데 방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결국 연산 2만 톤이라는 생산능력을 얼마나 채우느냐보다 고객이 요구하는 고품질 정밀재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느냐가 사업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포스코 소재·R&D와 결합…신수요 함께 만든다
정밀재 시장 확대에서 중요한 경쟁력 가운데 하나는 포스코와의 협업이다.
정밀재는 최종 제품의 품질뿐 아니라 이를 만드는 원소재의 특성이 중요하다. 새로운 용도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요구되는 강종과 물성을 원소재 단계부터 조정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포스코에스피는 자체 품질·개발 조직을 기반으로 포스코의 소재 및 철강 연구개발 역량과 연계해 신규 정밀재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회사 측도 정밀·극박 영역에서 포스코 연구조직과 협업하는 구조를 강조했다. 포스코에스피가 고객과 시장에서 새로운 요구를 발굴하면 이를 포스코의 소재 개발로 연결하고, 개발된 소재를 다시 정밀압연과 가공을 통해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미 협업을 통해 시장에 적용한 사례도 있다. 자동차 연료전지 소재 개발 사례가 대표적이다. 포스코와 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포스코에스피의 정밀재 생산기술과 연결해 실제 수요로 이어왔다.
향후에는 배터리를 비롯한 새로운 산업에서 정밀 스테인리스가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자동차 산업도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수소차로 전환되면서 기존 정밀재 수요구조가 변하고 있다. 내연기관 부품 일부의 수요 감소 가능성에 대비하는 동시에 수소연료전지와 배터리 등 미래차에서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배터리 분야 역시 셀과 모듈, 팩 등의 구조 및 소재가 변화하면서 스테인리스 정밀재가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 측도 배터리 관련 수요를 향후 정밀재가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할 영역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포스코 철강사업과 ‘전략적 정렬’…직속 전환의 핵심
포스코에스피 측은 이번 법인 출범을 단순한 사업 분리보다는 포스코 철강사업과의 ‘전략적 정렬(Strategic Alignment)’을 위한 사업 재편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산하에서 운영되던 STS사업을 철강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포스코 직속 체제로 옮겨 소재 개발과 생산, 판매 전략의 방향성을 보다 긴밀하게 맞추겠다는 의미다. 이는 포스코가 공시에서 밝힌 ‘그룹 철강관련 사업 영역 재조정 및 구조 개편’이라는 영업양수 목적과도 궤를 같이한다.
과거 포스코인터내셔널 계열에서는 종합상사와 모빌리티 사업이라는 큰 틀 안에서 STS사업이 운영됐다면 앞으로는 철강 제조업을 핵심으로 하는 포스코 바로 아래에서 독립된 STS 전문회사로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소재와 품질, 생산, 납기 등을 둘러싼 의사결정과 양사 간 소통 속도도 이전보다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회사 측은 포스코 직속 자회사 전환으로 철강 제조업과 사업 방향을 보다 직접적으로 맞출 수 있고, 의사결정과 긴급 소재·납기 대응에서도 이전보다 신속한 협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밀재에서는 고객의 새로운 요구를 포스코 소재 개발과 연결하고, 다시 개발된 소재를 포스코에스피가 정밀재로 제품화하는 협업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판재 가공센터 역시 포스코 소재와 고객 사이에서 실수요의 요구를 전달하고 필요한 규격과 가공 형태로 제품을 공급하는 접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결국 포스코에스피의 역할은 포스코라는 이름을 앞세워 범용 스테인리스 유통 물량을 늘리는 데 있기보다 포스코의 소재 경쟁력과 포스코에스피의 정밀재 제조·판재 가공 역량, 실수요 고객 기반을 연결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것에 보다 가까워 보인다.
대한ST에서 포스코AST와 포스코SPS,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을 거쳐 포스코에스피까지. 수차례의 사명과 소속 변화를 거친 STS사업은 약 9년 만에 다시 포스코 직속 체제로 돌아왔다.
새 출발에 나서는 포스코에스피가 정밀재의 기술·품질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판재 가공센터를 기반으로 실수요 시장을 확대하는 동시에, 포스코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STS 수요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